Hyun Hong

에드가 드가라는 인상주의 화가가 있었음을 그저 미술에 대한 상식으로만 만족하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뭐,발레를 하고 있는 소녀 그림 하나쯤 알고 있으면 무식하다는 소리는 안 듣겠구나 하는 지적 사치? 사실 나에게 있어 회화가 그랬고, 넓게는 미술이 그러했지 않았나 싶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미술에 대해 아니 좀 더 크게 예술에 대해 내가 ‘잘못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구나 또는 이해의 방향을 잘 못 잡고 있었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은 일종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나 할까,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나이가 들고 차츰 세상의 그림을 크게 그리면 그릴수록, 예술이 저멀리 있는 먼나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여기 있는 나의 일부이고 우리의 일부라고 하는 사실을 부정하기가 힘이 들어졌다. 너무 추상적으로 얘기했나. 그럼 이렇게 한번 얘기해보자.

어느 시대가 되었든, 어느 누구의 것이 되었든 예술이라는 것은 그 사회 - 全文化적 구조, 구체적으로 정치체제, 계급, 문화적 양태, 온갖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담론들 - 또는 역사(시간)성과 그리고 나와 같은 인간과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는 설득이다. 그 어떠한 학문적인 겁근도, 논리적으로 정치한 학술적인 접근도 결국엔 우리의 지고한 정신정의 표현양식인 예술이라는 것과 맞닿을 수 밖에 없음을 알아버렸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사진을 전공하고 있지만 시각예술 하나만으로도 그리 간단치 않은 많은 공부거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림 하나가 그냥 그림 하나로 끝나지 않음을 알게 된이상, 사진 한 장이 그냥 페이퍼 한 장이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된 이상 작품 하나 하나를 쉽게 지나칠 수가 없게 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드가의 그림들을 만나게 된것은 몇 해전 일이었다. Place de la Concorde란 그림을 본 후에 나는 인상주의를 새롭게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인상주의라는 게 뭐야?

그 즈음은 바로 내가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큰 밑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었을 때이기도 했다. 그 그림을 그냥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우선 그 대담한 구도였다. 난 무슨 스냅 사진 한 장을 보는 듯 했다. 이것은 그냥 사진이 아닌가? 그러나 물론 사진은 아니다.

사실상 지금도 이러한 구도의 사진이라면 보는 사람의 판단에 따라서 엉성한 사진, 또는 의도에서 벗어나 잘 못 찍혀진 사진으로 오인되어질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는 매우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사진이든지. 그림 왼쪽의 지팡이를 든 신사는 몸의 일부만 드러나 있다. 오른쪽의 멋진 모자와 시가를 물고 있는 신사는 골반 아래에서 잘려나갔다. 두 어린 아이는 허리에서, 개는 바로 다리 관절에서 그림을 그친다. 그리고 그림 중앙엔 텅 빈 콩코드 광장. 드가는 이런 식으로 콩코드 광장을 그려낸 것이다.

광장을 그리되 그저 텅 빈 광장의 세부 묘사가 아닌 조역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곳곳에 배치시켰고, 그 사람들은 또한 조역에 걸맞게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것이 아마 드가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인물들의 모양새는 마치 사진의 한 장면처럼 정지된 한 순간으로 멈춰 서있다.

이 그림은 동시에 매우 도회적이고 세련된 모양새다. 광장과 사람들이 잘 어울려 당시의 변모하던 도시와 시민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이 그림은 그 때로서는 매우 파격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드가를 포함한 당시의 인상주의 작품들은 어떠했으며 그 시대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 이런 궁금증은 당연한 것이 된다.

나는 인상주의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야 했으며, 마지막으로 사진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하는 점도 빠뜨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한, 사진도 그 즈음에 발명되었으니까 말이다. 너무 재미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에 대해 나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작품을 보고 우리가 감동해야 하는 이유는 캔바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物性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고흐가 밤하늘을 밤하늘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던 그만의 감성과 인식의 태도인 것 이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함께 보았을 밤하늘,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는 그 하늘을 고흐는 우리에게 고흐는 우리에게 그렇게도 볼 수 있음을 가르쳐준 것이다.

어떻게 밤하늘을 그렇게 새롭게 읽어낼 수 있었을까 너무도 놀라울 따름이다. 예술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해왔는가에 대한 일종의 인식의 역사이다. 예술은 어차피 어떤 식이로든 밖으로 객관화되야하는 표현의 입장을 취하기는 하지만 표현 이전에 반드시 인간의 인식과 판단과 행동이라는 필터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필터링은 다시 예술을 둘러싼 세계, 즉 사회와 역사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맟닿아 있다.

그의 미적 표현을 후기인상주의라는 틀에 가두는 것은 미술사라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학술적인 문제이겠지만, 예술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것이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만들어왔던 흐름을 감지하는 노력이 시간을 토막내서 분류하고 틀으러 만드는 사적 입장보다 앞서야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제 인상주의 애기로 돌아가자.

글 앞에서 그리고 고흐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세계관, 그 세계관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 흐름은 인상주의 역시 피해갈 수가 없다.

Place de la Concorde 라는 작품을 만난 훙 다시 한번 공부하게 된 인상주의, 그리고 그 시대의 회화와 사진과의 함수관계 역시 위의 사실들을 잘 방증해준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대략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두세기를 살았던 인물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이 예고되었고,동시에 시작되기도 했던 매우 중요한 시기라 하겠다.

현대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예술이라는 것을 단지 예술서적인 의미망 내에서만 논하는 것은 오히려 현대예술을 이해하는데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시기의 예술은 바깥세계를 바라보는 세게관의 대전환이라는 커다란 패러다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를 시작하면서 인간은 고전주의적인 인식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신의 명령이라고 할까.나무는 언제나 나무여야 했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도 그것은 계속해서 나무로 남아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림안에서의 나무의 구도는 언제나 비례와 균형이라는 규율에 맞게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림안의 그려진 것들은 항상 그림밖의 그 무엇과 일대일 대응관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림안에서조차 합리적이고 정형적인 원칙이 존재해야만 햇던 것이다. 엄격한 대상성과 정형화되고 획일적인 미작 규율, 그것이 기존의 미술을 지배했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이 살았던 시대엔 무언가 다른 움직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물에서 형과 색과 구성을 자유롭게 하고자했다.

형과 색과 구성이 대상에서 자유로와지고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되고자 했다. 이제 예술은 외부세계와 독립된 하나의 미적 정보로 존재할 수가 있게 된것이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인식의 새로운 지편이었으며 예술에서도 커다란 혁명이 되었다. 인상주의를 비롯한 여러 새로운 미술 조류들은 그러한 흐름 아래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하나의 문화현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 한복판에 있었던 인물들이다. 당시의 격변하던 에술정신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고전주의적 미술구도와 형태구성의 파괴라는 대담한 양식으로 객관화하고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그러한 변화의 첨단에 있었던 인물로 예민한 미적 감각을 소유한 인물들이었다.

작품의 구성에 있어 인상파 화가 이전의 것과 인상파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인상주의 화가 3인의 세작품으로 전시를 기획한 것은 그들의 미술적 형태구성이 A.예술사적인 의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확신과

동시에 B.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이다. 인상주의를 비롯한 그 즈음의 여러 미술양식들이 주로 색채와 형의 파괴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과 차별화 될 수도 있다는 의도도 있다.

인상파 화가들이 사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진이 정확한 형의 모사를 독점하고 있었기에 회화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설득력있는 이론도 있기는 하지만, 작품에 따라 오히려 사진 이상의 사진적인 관점에서 미술에 접근한 경우도 없지 않다.역설적이게도 당시의 사진계는 매우 회화주의 성격 일색으로 사진이 회화를 추총하고 닮아가려고 했지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양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사진술이 제공할 수 있었던 시각적 인상, 즉 새로운 앵글과 시간의 분해같은 새로운 표현 기법은 사진이 아닌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속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이 되었고 발전해 나갔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당시 사진계는 오히려 보수적이었으며. 인상주의 화가들이 이끌었던 미술계는 혁신적이었다는 일종의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검증되지 않은 사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두가지를 더해서 말하고자 한다.

하나는 인상주의 작품들의 회화적 구성파괴가 단지 사진의 영향으로만 가능했을까하는 의문이다. 당시의 회화적 유행이나 시대적 변화를 생각할 때 회화 영역에서의 독자적인 구성파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두 번째 나는 사진적 구성도 하나의 시대적 조류로 포함하고 싶다.

사진적 시각이란 반드시 카메라와 같은 기계적 장치과 관련이 있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 사진적 시각이란 카메라를 매개하지는 않지만 마치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것 같은 인식의 상태, 또는 지각패턴을 말한다. 즉, 카메라가 존재하기 전에도 사진적인 인식의 상태는 존재할 수 있다는 애기다.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은 혹 카메라가 없었어도 사진적 감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이다.

전시되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구성 또는 구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만을 선택했다. 불안한 구도 아래에서도 생동감있는 운동감과 치밀하게 계산된 균형감각을 읽어낼 수가 잇다. 동시에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그렸던 도회적 느낌의 작품들이며 매우 감각적이고 세련된 그림들이다. 세점의 작품을 감상할 때 사진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건 그렇지 않은 관객이건 간에 즉각 작가들의 예민한 사진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기획전의 타이틀은 They were so cool! -인상주의 화가 3인의 새로운 시선 이다 난 당시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요새말로 매우 cool했을 것이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cool하다는 것이 뭔가.

질척이지 않고 산뜻하다는 것 아닌가.

변화에 민감하고 또한 가로질러간다는 것 아닌가.

반체제적이고 탈조직적이라는 것 아닌가.

동시에 도회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지녔다는 말 아닌가.

그런 것들이 cool한 것이라면 위의 세작가는 정말 cool한 것이 아닌가.